덕질, 그 이유 없는 사랑에 관하여
옷장 속에서 예전에 썼던 일기를 발견했다. 몇 장 쓰지 않아 빳빳한 2018년도 일기장에는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던 날도, 친구와 싸운 이야기도, 준우라는 꼬마의 엄마를 찾아준 이야기도 있었고, 곡절 끝에 취업하게 된 이야기도 있었다. 모두 까마득하고 희미한 추억들이다. 그중 가장 웃겼던 이야기는 예전에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에 관한 일기였다.
저 무렵은 회사를 그만두고 카페 알바를 하면서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였는데, 취업이 잘 되지 않아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뒤쳐지고 있다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던 때다. 근심이 많던 그때의 나는 최애 아이돌 그룹의 인터뷰에 꽤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. 다른 팀들은 지금의 연차에 솔로 활동을 하는데, 당신들은 어떠냐는 질문에 한 멤버가 “데뷔시기가 같은 팀들의 성장 속도를 따라가지 않았다. 그런 생각에 압박을 받지 않고 팀으로 오래갈 수 있는 게 더 중요하다”라고 말한 것이 인상 깊었다고 적혀있었다. 그리고 덧붙여서 인생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라 나 혼자만의 산책인데 주변 사람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조급해진다고, 느리게 걸으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지나치고 있다는 심오한 걱정이 쓰여있었다. 4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돌 그룹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니, 그는 그저 그룹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고 별 의미 없이 했던 말이었다. 그런 말에 인생을 돌아보고, 삶의 의지를 얻고 동경했던 25살의 나를 떠올려보니 귀엽기만 하다.
저때의 나는 면접을 보러 가면 긴장되는 마음을 감추기 위해서 최애의 이름을 세 번 마음속으로 외치고 들어갔고, 30분을 보기 위해서 추위에 덜덜 떨면서 6시간을 기다렸다. 대체 무슨 마음이었을까.
지금의 나는 그때 6시간을 기다려서 받은 포토카드를 판다. 일기장과 함께 상자에 고이 담겨있던 포토카드들은 싼 건 천 원, 비싼 것은 6만 원도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. 귀여운 꽃받침 포즈를 하고 있는 6만 원짜리 포토카드를 사겠다는 한 팬은 내가 다른 포토카드도 필요하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다 줘도 되는 거냐며 감격하는 눈치였다. 한때는 소중히 모았던 것을 이제 미련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걸 보니, 변해버린 마음이 실감 난다. 손바닥보다 작은 사진을 구겨지지 않도록 포장하면서,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마음을 쏟았던 것이 변해버렸다는 사실이 속절없이 슬퍼질 줄 알았건만 어쩐지 마음이 후련하다. 허무하거나 낭비한 것이 아니다. 다시 또 무언가를 이렇게 좋아하고 싶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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